약효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처방했는데, 실제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고 한다. 플라시보는 '기쁨을 주다' 또는 '즐겁게 하다'라는 의미를 담은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즉, 플라시보 효과란 '생리학적 영향이 없는 가짜 약을 복용했는데도 상태가 개선되는 현상을 말한다. 임상시험을 통해 우울증, 통증, 천식, 파킨슨병, 관절염 등 다양한 질병과 증상에서 효과가 증명된 바 있다. 최근 플라시보 효과로 녹내장 환자의 안압이 실제로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짜 약도 효과 있어...녹내장 안압 10% 낮춰 서울대병원 안과 김영국 교수 연구팀(충남대병원 최수연 교수, 제주대병원 하아늘 교수)은 지난해 6월까지 발표된 녹내장 안약 치료 관련 40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 논문을 검토해 녹내장 안약의 위약 효과를 결정하는 요인을 조사했다. 녹내장은 실명을 유발하는 3대 질환 중 하나로, 국내에서만 100만 명 이상의 높은 유병률을 나타낸다. 시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녹내장은 안압을 낮추는 치료가 질병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안압을 낮출 수 있는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신약 승인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위약군과의 효과 비교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녹내장 안약 관련 위약 효과를 정량화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학술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안압 감소 치료 관련 40개의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 결과들을 통합해 표본 7,829안을 확보했다. 최종 분석에는 33개의 위약군(2,055안)과 7개의 비치료군(1,184안)이 사용됐다. 연구팀은 네트워크 메타분석을 통해 치료군, 위약군, 비치료군으로 나눠 안압 감소 효과를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동일 환자에서 위약 처치 전후를 비교했을 때 처치 후 2개월째 1.30mmhg의 안압 감소 효과를 보였다. 위약군은 비치료군에 비해 2.27mmhg 만큼 안압 감소 효과를 보였다. 이 값은 시간에 따른 질병 경과가 반영된 순수 위약 효과로 볼 수 있다. 대상 환자들의 치료 전 평균 안압이 22.7mmhg인 점을 고려하면 약 10% 안압 감소를 보인 셈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녹내장 환자들에서 안압 감소 치료의 위약 효과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 안과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안과학(ophthalmology)'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플라시보 효과'...암, 고혈압 등에서 긍정적 결과플라시보 효과는 낙관적인 믿음이 실제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플라시보 효과는 오랜 질병이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기 쉬운 질환을 동반한 환자일수록 더 높아진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암 환자에서 효과가 뛰어난데, 암 환자들이 흔히 겪는 극심한 피로 증상을 플라시보 효과로 가라앉힐 수 있다. '암 관련 피로'는 암 자체 또는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독성 물질 및 부작용 등으로 겪는 피로를 말한다. 진행성 암 환자의 70~80%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 60~70%는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겪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국 텍사스대(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연구팀에 따르면, 플라시보 효과가 실제 암 치료 과정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관련 피로'에 시달리는 암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위약 시험을 진행했을 때, 가짜 약을 복용한 그룹이 대조군(약을 먹지 않은 그룹)보다 피로 증상이 현저하게 줄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를 대상으로 플라시보 처방약을 처방한 결과, 최고 27%에서 통증 완화, 입맛 개선, 체중 증가 등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암 환자뿐만이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도 유용하다. 가슴이 빨리 뛰거나, 밤에 잠을 자지 못하거나 혈압이 높아 뒷머리가 당긴다고 호소하는 경우에는 플라시보 처방이 도움 될 수 있다. 또 '신경학(neurology)'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비싼 약'일수록 플라시보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음에는 100달러, 두 번째는 1,500달러인 주사제(실제는 생리식염수)라고 말하고 약물을 투여한 후 매시간 운동기능 테스트를 통해 위약 효과를 살폈을 때, 비싼 약을 주사했을 때의 운동 기능이 더 크게 개선됐다. 위약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지속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환자가 위약의 효과를 믿는 동안만큼은 위약효과가 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와 같은 연구의 결과는 환자가 자신의 병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